정보화마을경북 성주 도흥참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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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외사진

    경상북도 성주군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도흥리는 36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도흥리는 낙동강을 끼고 도는 넓은 평야지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곳으로 성주군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넓은 들녘과 비옥한 토질에서 생산되는 참외는 10월에 재배를 시작하여 이듬해 3월 중순부터 9월까지 출하된다. 이 곳 참외는 전국 어느 곳보다 맛과 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하다. 이 곳은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20 여분 거리) 관계로 생활여건이 대도시와 유사하다.

    7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20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마을을 이끌어 나가고 있어 다른 시골 마을에 비해 활기차다. 특히 도흥리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의 정취와 함께 인정을 듬뿍 담고 있는 마을이다.

    도고산사진

    ■ 자연환경

    낙동강의 성주대교로부터 북쪽으로 2km 거리의 군도변에 위치하여 선남면 동부의 요지마을이다. 신흥, 사압실, 짜골, 내골 마을로 구성된 도흥리는 서쪽으로는 도고산에서 이어져 온 낮은 야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동쪽으로는 낙동강과 아득한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 유래

    844년 노한욱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에 입향(入鄕)하면서 신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곳은 조선시대때 도남방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곳은 성주군 선남면으로 편입됐는데, 도남방의 도자와 신흥의 흥자를 따서 도흥이라고 불리웠다.


    ■ 신흥(道南, 新興)

    신흥마을은 인조 때 함평도 사람 모금 노덕현이 이 곳에 입향, 후손들이 살면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다. 이 곳은 수원부사와 함께 황해수사를 지낸 금계 노인 노덕현(1566~1622)의 조부를 향사하는 모금제, 그리고 증병조판 서금계 선생 시도비를 함께 모시고 있다. 또 서금계 선생의 후손으로 교우와 시문에 밝은 소산 노동호가 후학을 가르치던 신양서당이 자리하고 있다.

    병자호란을 피하여 이 곳에 입향한 판도판서 공휘관 11세손 김해사람 성계 김입경(1619~1700)의 증손 김세장이 영조 4년 이인좌의 난을 토벌해서 원종공신록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성산기공비에 새겨져 있다. 현재 유허지에는 후손들이 도남제를 세워서 그를 추모하고 있다.

    ■ 사압실

    사압실은 신흥마을의 서변 산간에 위치하고 있는 부원산 언덕아래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충주 석씨의 집성촌인데 병조좌랑 석종이 광해군의 혼조를 피해 벼슬을 버리고 삼가에 입향, 호손들이 그를 추모하는 삼산당을 모시고 있다. 그의 후손 낙파 석진우는 사마시에 올라서 박학경사했고, 송암 석인주는 시서에 능했고 성암 석봉기는 경사에 뛰어났다. 이곳에서는 고성현령을 지낸 성산인 여자방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서편에는 야노당 이순(1530~1606)의 묘가 있다.

    ■ 짜골

    사압실의 북쪽 낮은 산 사이에 있는 산촌이다. 서편에 왕산과 그 뒤로 도고산이 있다. 충주 석씨의 피난처로 전해온다.

    ■ 내동

    사압실 서남쪽 산골로 경주 최씨 집성촌이다.

    성균생원 최선길이 광해조 때 벼슬을 버리고 입향해서 후학을 길렀고 그 자리에 내산서당을 세워 추모하고 세덕비를 모시고 있다. 또 시문에 능한 효창참봉, 야헌, 최영환이 후진을 강학하던 야한제가 있다. 마을 서쪽은 선남면 조재지로 나드는 마안재 고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