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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외유래

    참외의 유래 미국에서 산업적으로 발달된 것은 1870년이후라고 하며 품종, 재배기술, 수송, 저장 등이 발달해서 오늘날 특수한 멜론산업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캔털루우프라는 이름으로 노지재배 되고 있다. 무굴제국(Mulghal, 1526 ~ 1858)시대에 인도에서 제 1 급의 멜론은 살다(Sarda)라고 부르는 카불산의 품종으로 인도 국내에서는 재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품종은 1894년 영국의 큐-왕실식물원(Royal Gardens Kew) 에 보내져서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카불에서 재배된 살다로 호칭되는 과실이 유럽으로 수출되어 겨울과실로써 비싼 값으로 팔려졌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옛부터 멜론이 재배되었다고 하는데 성서의 민수기에도 멜론에 관한 고사가 있으며 라인하르트(Reinhardt, 1912)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의 구신제국(B.C 28 ~ 11C)에서 재배되었다는 것이 사원의 벽화 속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로마의 프리니(Pliny, A.D 23 ~ 79)는 그의 저서에 멜론을 페포네스(Pepones)라고 기록하고 있어 고대 그리이스, 로마인들에게 애용되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시대(14 ~ 16세기)에 캔털루우프(var. cantaloupensis)와 네트멜론(var. reticulatus, netted-melon) 및 겨울멜론(var. inodorus, winter melon)이 재배되었다현재 중국 신강성과 감숙성의 사막지대에서 재배되고 있는 터어키스탄계의 합밀과(var.saccharinus) 는 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나 사막지대를 제외한 중국의 기후에 적합하지 못하다. 합밀과는 분류학적으로는 네트멜론(var. reticulatus) 과 겨울멜론(var. inodorus) 의 두 변종과 이들 사이의 잡종후대, 그리고 일부 성환참외(var. microspermus) 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강성의 투르판은 연간 강우량이 평균 40mm이고 공기가 건조하여 낮기온 40。C에서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건조한 지대이다. 합밀과를 재배하는 사막지대는 낮기온 40。C전후이고 주야 온도교차가 12 ~ 16。C로써 이러한 기상조건이 잎의 크기는 작고 엽육이 두터운 건전한 잎을 만들고 광합성을 높이며 당 축적의 촉진으로 유명한 합밀과가 생산되고 있다.



    굴절당도계의 당도는 최고 20도, 평균 16(13~20)도 라고 한다. 합밀과 산지인 사막지방에서는 천산산맥의 눈이 녹은 물이 생활용수 및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는데 샘으로 연결된 지하수로가 설치되어 있어 수온 13℃인 물을 한주일에 두번 합밀과 재배이랑에 관수하고 있다고 한다. 합밀과의 무게는 1 ~ 15kg으로 크기, 형태, 과색, 네트의 상태, 과육, 색 등이 다양하고 만생종은 10월 중순 ~ 11월 상순에 수확되어 지하저장고에 저장하면 다음해 5월까지 저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합밀과는 중국내 수요뿐 아니라 홍콩, 일본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동양계멜론은 참외와 김치오이인데 이들은 다같이 멜론의 변종이고 서로 교잡이 잘 된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3세기경에 저술된 이아에 기록이 있고 예기(B.C 475 ~ 221), 사기(B.C 91), 한서(92) 등에도 첨과의 기록이 있다. 6세기 전반에 산동성을 중심으로 저술된 제민요술(A.D 530 ~ 550)에는 참외에 관한 품종과 재배법이 기술되어 있다. 일본에서의 내력은 기원전으로부터 에도시대까지 110개소의 유적에서 출토된 종자를 조사한 결과 이들 종자의 출토 유적지가 한국과 가장 가까운 구주의 서북쪽에 분포가 많으므로 참외는 기원전에 중국 또는 한국으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동북지방과 구주 지방에서는 참외라는 이름이 불리어지고 있다. 제 2 차 세계대전후 하우스 및 노지멜론의 육종소재를 세계각지로부터 도입하여 참외와 멜론의 변종간 잡종을 이용한 F1품종이 육성되어 고정품종이었던 참외는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에 중국의 화북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문헌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에 황과와 함께 참외에 대한 사실이 전해지고 있으며 중국고문헌의 기록과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관계를 고려하면 통일신라시대에는 이미 재배가 일반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역사에서 쥐참외를 속칭 신라갈이라고 한 기록이 있는데 중국에서 쥐참외를 신라갈이라고 한 이것이 우리나라의 옛 명산물이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 흥미롭다. 또 고려사에 의하면 숙종 2년(A.D 1104)고려자기에 과형청자를 비롯하여 참외를 형상한 자기와 주전자는 예술품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과실에 단맛이 있고 독특한 향기가 있어 여름철 과실로서 기호에 맞아 이 시기의 참외재배가 융성하고 생활이 안전되어 이러한 문화가 창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참외는 외가 오이를 가리키고 있는데 참외의 < 참 >은 순수한 우리말로서 우리말 큰 사전에 의하면 <허름하지 않고 썩 좋은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는 바와 같이 오이보다 맛과 향기가 썩 좋다는 표현인 것이다. 참외의 기록은 향약구급방, 조선관역어, 훈몽자회, 신증류합, 지봉유설, 산림경제, 고사신서, 정몽류어 등에도 기록이 있는데 참외는 속명으로 불리어져 왔다. 허균(1569 ~ 1618)이 팔도의 명물식품에 대하여 편찬한 도문대작에 의하면 참외의 명산지로 의주에 대한 기록이 있고 의주참외는 매우 달다고 하였다. 증보산림경제에 의하면 참외는 계통이 많고 과피색은 청녹색이면서 금빛나는 것, 또는 개구리무늬가 있는 것 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960년대 초 참외의 F1이 보급되기 전까지 전국 각 지방에 따라 강서참외, 감참외, 골참외, 꿀참외, 백사과, 청사과, 성환참외, 개구리참외, 줄참외, 노랑참외, 수통참외 등으로 불리어졌던 재래참외가 F1품종의 진출에 따라 급속히 없어졌다. 참외는 그 품질과 맛이 기후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물로, 재래참외는 우리나라 기후풍토에서 그 특성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국보 94호인 청자과형화병으로 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12세기의 문화유산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1957년 일본에서 도입된 은천참외는 당시 우리나라 재래참외에 비해 당도가 높아 인기가 있었으며 시중에서는 나이론참외 또는 열골참외라고도 호칭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당시 인기가 있었던 화학섬유인 나이론이 처음 유행하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이우승 저 "한국의 채소" (1994)에서 발췌 - 경북대 출판부 532pp)